이 땅에서 장애인으로 일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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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387회 작성일 17-06-02 07:32본문
차별과 편견에 우는 근로 장애인들
저는 이 시를 읽다가 몇 번 눈을 껌벅였는지 모릅니다. 일자리가 생의 모든 것이다시피 한 요즘 면접은 장애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피 말리는 경험입니다. 면접날이 잡히면 취업자들은 잠자리가 뒤숭숭합니다. 어떤 질문을 해올지, 또 어떻게 답변을 해야 이른바 질문자의 마음에 들 것인지 도통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예상 질문을 짜고 그럴듯한 답안도 만듭니다. 면접 현장에서도 마찬가집니다. 패기와 겸손, 열정과 냉정, 침묵과 달변, 당당과 비굴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합니다.
면접에 나간 취업희망자가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시인은 변변하게 적을 것이 없는 이력서를 제출하고 아마 언어에 장애가 있었는지 이렇다 할 답변도 못 한 채 그만 면접장을 나왔나 봅니다. 아무리 가슴에 뜨거운 열정을 품고 머리에 풍부한 지식을 갈무리해 놓았어도 말을 듣지 않는 사지와 혓바닥이 원망스러웠겠지요.

힘없이 돌아가는 길. 머리는 한없이 수그러져 다리 사이로 들어가고 거리의 노숙자에서 자화상을 엿봅니다. 문득 머리를 올려다본 하늘은 푸르러, 고달픈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어졌나 봅니다. 이 시인이 합격 통지서를 받고 일자리를 구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렇게 됐기를 바랍니다.
어느 나라보다 취업 경쟁이 치열하고 어학과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온갖 스펙을 요구하는 이 나라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얼마나 어려운지는 통계가 말해줍니다.
우리나라의 등록된 장애인은 2016년 기준으로 약 244만 명. 전체 인구의 5% 정도를 차지합니다. 그렇지만 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까지 합하면 훨씬 더 늘어납니다. 244만 명 가운데 취업을 하거나 자영업 등을 하면서 경제 활동에 참가하는 비율은 36.1%에 그쳤습니다. 일반인들의 고용률은 약 61% 정도니까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이 가운데 임금을 받는 장애인 근로자는 59만 5천 명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이 임금 근로자 가운데 무려 61%나 되는 36만 3천 명이 비정규직 근로자라는 데 있습니다. 우리나라 일반 근로자의 비정규직 비율이 33% 정도니까 두 배에 가까운 셈입니다.
그러니까 장애인들은 일반인들보다 일하는 비율도 낮지만, 그 일자리 역시 양질의 일자리라기보다는 언제 해고될지 모르고 임금이나 복지에서 상대적으로 차별과 불이익을 받는 질 낮은 일자리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임금은 근로자가 제공하는 노동에 대해 어떤 보상을 받는가를 말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입니다. 2016년 장애인의 평균 임금은 169만 원이었습니다. 전체 임금 근로자 평균이 241만 원이었으니까 70% 정도를 받는 셈입니다.
몸을 가누기 어려운 중증 장애인의 경우는 훨씬 줄어듭니다. 일반 근로자의 경우 시간당 6,030원의 최저임금은 보장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증 장애인의 경우는 이 조항에서조차 예외입니다. 현행법상 중증 장애인을 고용할 경우에는 최저임금 이하로 주어도 무방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실시한 '중증장애인 노동 실태'를 보면 이들의 평균 임금은 시간당 2,630원에 불과합니다. 지난해 최저임금이 6,030원이었으니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중증 장애인의 경우 출퇴근이 더욱 힘들고 치료비나 약값도 더 들어야 하니 생활비가 더 들 텐데 임금을 더 주지는 못할망정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렵사리 직장을 구한 장애인들은 도저히 박봉을 견디지 못해 그만두기 일쑤입니다. 그뿐입니까? 장애인들은 자신의 권리를 단호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걸핏하면 임금을 떼이거나 온갖 부당한 대접을 받기 일쑤입니다. 심심치 않게 사회문제가 되는 장애인 노동착취나 임금 체불, 인권 유린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들이 어렵사리 직장에 들어갔다고 해도 근로 조건이나 작업장 환경 혹은 동료들의 보이지 않는 차별 등을 견디기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평균 직장에 다니는 기간이 5년 9개월에 그쳤습니다. 일반인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12년 정도니까 역시 절반에 미치지 못합니다.
최근 국민일보에 게재된 기사는 장애인 취업의 참담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장애인 특수학교에서 빵 굽는 기술을 배운 발달 장애 2급 18살 김 모 군은 빵집에 실습생으로 취직했지만, 어머니는 석 달 만에 자식의 직장 출근을 단념시켜야 했습니다. 네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출퇴근하면서 주 5일을 일한 대가는 불과 30만 원. 차라리 집에서 돌보는 것만도 못하다는 게 어머니의 가슴 아픈 결론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0년 장애인들의 고용을 위해 이른바 장애인 고용촉진법을 만들었습니다. 공공기관과 100인 이상을 고용하는 기업체에서 2.8%의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요?
고용노동부의 발표를 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하는 업체는 약 2만 9천여 곳인데 고용 비율은 2.66%에 그쳤습니다. 약 16만 9천 명 정도가 일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상이 되는 대기업의 52%가 의무고용률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이 기업들은 장애인들을 고용하는 대신, 고용하지 않을 때 부과되는 부담금을 내고 있습니다. 지난해의 경우 이 부담금이 4천2백억 원이나 됐습니다. 장애인들에게 맡길 업무가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지만 정말 장애인을 고용하려는 의지는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속된 말로 '돈으로 때우겠다'는 배짱은 아닐까요?
거리로 나서는 장애인은 더 고통스러워

제가 사는 집 앞 광장에는 언제나 맨바닥에 좌판을 펴고 우두커니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왼쪽 손이 휘어지고 다리도 불편하셔서 기우뚱기우뚱 걷습니다. 발음도 시원찮아 사람들에게 물건을 사달라고 외치지도 못합니다. 게다가 사방에 편의점과 대형마트, 천원 샵이니 매상이 신통할 리 없습니다. 하늘이 푸르고 날씨도 따뜻하면 그런대로 견딜만하지만, 한여름 뙤약볕 아니 한겨울 살을 에는 추위는 여간 곤혹스럽지 않습니다.
1년 전쯤인가 느닷없이 소낙비가 내리자 할아버지는 어쩔 줄 모르고 땅바닥에 펼쳐놓은 물건들을 주섬주섬 한 손으로 챙겨 그냥 부둥켜안았습니다. 하나라도 젖지 않게 하겠다는 할아버지의 몸짓은 어떤 기도보다 엄숙했습니다. 삶이 얼마나 비루하면서도 숭고한 것인지요. 할아버지의 젖은 물건들을 다 사드리고 싶었습니다. 비록 만 원어치밖에 사드리지 못했지만…

변변한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은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일할 수 없는 시 속의 맹인 부부는 거리로 나서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를 불러 길 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귓전을 스치는 선율이 발길을 멈춘 사람들이 잠시 분주한 일상을 내려놓고 아름다운 음악에 젖게 한다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힐링'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눈이 쏟아지기 시작하니까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노래를 스쳐 가고 맹인 부부는 그만 밤거리의 눈사람이 되고 맙니다. 장애인들에게 온갖 차별과 멸시를 안기는 세상. 차가운 눈길만 주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싶은데 야속한 눈은 맹인 부부의 깊은 사랑의 마음을 몰라줍니다. 그날 이 부부의 앞에 놓인 그릇에도 눈만 소복이 쌓였을 것을 생각하니 포근하게만 느껴졌던 함박눈이 차갑게만 느껴집니다.
장애를 딛고 빛나는 성과를 내는 사람들

그런데 여기서 한번 곰곰 짚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장애'는 도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정을 내리고 그들을 '장애인'이라고 규정짓는 것일까요? 혹시 미셸 푸코가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기준이 사회적,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듯이 장애에 대한 정의나 장애와 비장애의 기준도 자의적이고 정치적인 요소는 없는 것일까요? 소아마비 장애에도 불구하고 서강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열심히 가르치시다 세상을 떠나신 고 장영희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장애인은 신체적 불편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사회가 장애로 여겨 정의내린 것이고 장애인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정의에 따라 장애인으로 운명지어지는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누구나 특정한 분야에서 남보다 열등한 구석을 가지게 마련이고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은 지극히 상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장애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특정 분야에서는 얼마든지 일반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보다
탁월한 재능과 성과를 올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각 분야에서 이런 장애인들을 숱하게 목격합니다. 멀게는 작곡가로서 치명적이랄 수 있는 청각 장애를 딛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가 된 베토벤이 있습니다. 두 팔과 두 다리가 없지만, 폭발적인 음성으로 무대를 뒤흔드는 독일의 바리톤 가수 토마스 크바스토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의의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됐지만 훌륭하게 지휘를 하고 또 장애인 합창단도 만든 세한대학교의 정상일 교수라든지, 시각 장애인이면서도 탁월한 연주를 들려주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 연주자도 있습니다.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통쾌하게 부숴버리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아동 문학가로도 이름을 떨치신 윤석중 선생님은 이런 시를 쓰셨나 봅니다.

장애인도 당당하게 일하고 정당하게 대우받는 세상을 향하여
불의의 장애를 입은 사람들에게 소원을 물어보면 한결같이 일하고 싶다고 합니다.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역량에 걸맞은 일을 찾아서 열심히 일하고 그 대가를 떳떳하게 받고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공동체가 장애인들에게 적절한 노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복지정책은 없습니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소수자와 비주류로 소외된 국민들에 대해 배려를 강조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자였던 지난 4월 '장애인의 날'을 받아 장애인의 처우와 복지, 일자리를 개선하기 위한 11개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장애인도 사람 대접받는 나라, 장애인도 일터와 가정이 있는 나라, 장애인도 건강하게 문화를 누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공약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기업들도 마지못해 장애인들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작업환경과 업무를 발굴해야 합니다. 정부 역시 기업들이 장애인들을 되도록 많이 고용할 수 있도록 각종 세제와 재정지원을 늘려야 합니다. 현재 장애인을 고용할 경우 지원하는 장려금이 지난 2010년 이후 오히려 줄어든 것은 기업의 장애인 고용을 결과적으로 정부가 막은 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장려금을 더 늘려 장애인 고용을 늘리려는 기업의 사기를 북돋워 줘야 합니다.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드는데 동참해야 합니다. 몇몇 대기업에서 실시해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 '자회사형 장애인 사업장' 같은 제도를 적극 도입해야 합니다. 일반인들과 함께 일하기 어려운 특수성을 고려해 장애인이 함께 모여 일하기에 적합한 일과 사업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름이 저와 같은 시각 장애 시인 손병걸 님은 군 복무 시절에 얻는 질병으로 시각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는 피나는 수련 끝에 어엿한 시인이 되었고 이런 시를 썼습니다.

두 개의 눈을 잃은 대신 열 개의 손가락이 눈동자가 되어 눈을 다시 떴고 보아도 믿지 않던 사람이 보지 않도록 믿게 되었다니. 이 열 개의 눈동자를 이용한다면 일반인은 하지 못하는 일을 거뜬히 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손 시인과 같은 많은 장애인이 장애로 인해 잃은 것 못지 않게 새로운 것을 얻고, 그 새로운 능력으로 기쁘게 일할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희망합니다. 그리하여 베토벤이 미리 써 둔 유서에서 세상을 향해 외친 이 말처럼, 장애인들이 살맛 나는 세상이 다시 정상인들에게 큰 자극이 돼서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또 생의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새날이 열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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